2016.9.21 골2 묵상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골2:6-7)

1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얼마나 놀라운 비밀인지 설명했다. 그는 만유 안에 계시며 만유보다 먼저 계시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신 분이자 놀라운 사랑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 그것이 정말 놀라운 비밀이다. 그러므로 2장에서는 도대체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다.

성경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고 하면서 동시에 우리로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리스도라는 충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계신 신성과 능력을 생명으로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른 것을 혼란시킬 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을 배우고 사람들의 전통과 율법과 같은 것을 지킴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혼동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먹고 마시는 일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과 빚문서를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다.

우리가 얽매여야 할 법이 더 이상 없으며, 지켜야 할 율법이 더 이상 없다. 아직도 율법을 지키며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라 말하는 것이 그러므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23절은 그러한 것들이 꾸며낸 경건과 겸손,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보이지만 결국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모두 유치한 원리들일뿐이다... 내게 얽매이고 있는 유치한 원리가 있는가? 내게 정죄감을 주고 마음에 어려움을 주는 것들. 사실 모두 내가 세운, 그리고 얽매이고 있는 유치한 원리들일뿐이다.
여기서는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데... 이럴 때 저번에는 이렇게 했는데... 저 사람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

아니다. 이것 저것 얽매이며 사람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얽매이지 말자. 실체는 오직 그리스도 아니신가. 그리고 그분이 가장 잘 아는 분이 아닌가. 내 걱정, 내 염려, 그리고 나의 연약함까지 모두 다 보필하시는 주님께 내 마음을 맡기자. 그러므로 더 이상 유치한 원리에 얽매이지 말자. 실체는 오직 그리스도 그분이시다(17절). 

2016.9.20 골1 묵상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 가운데 나타난 이 비밀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려고 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요,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골1:27)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한다.
믿음과 소망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
에바브라와 함께 신앙을 지켜가는 교회.

바울이 그러한 그들에게 제일 먼저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바울은 이방 사람 가운데 나타난 가장 풍성하고 놀라운 영광의 비밀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알아갈 최고의 비밀이요 놀라운 복음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는가?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으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주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주님 안에서 존속한다.

주님은 죽음에서 가장 먼저 살아나셨고,
이 세상을 십자가의 피로 평화롭게 하시며, 온 땅과 하늘을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키셨다.
그는 충만이시며 그는 근원이시다. 그는 우리의 의의 근거이시며 복음의 핵심이시다.

그런 그리스도를 너는 아는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있던 비밀,
이는 다름이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이시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골1:28)

오늘이라는 삶에서 걱정과 무기력과 연약함을 느끼는 나는 과연 무엇이관대,
그리스도를 두고서도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었을까.
내 삶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데도 어찌 염려할 수가 있으며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데도 어찌 흔들릴 수 있는가.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과연, 이 그리스도면 충분하다.

2016.9.18 빌3 예수를 얻는 법 묵상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8-9)

모든 것은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무슨 물건을 사든 그에 알맞은 가격과 가치에 따른 대가를 지불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여 나를 사셨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 짜리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복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지불해야 하는가?
복음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어떠한 값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나 자격 요건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거저 주신다.
다만 우리는 온전한 믿음으로 완전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한다.

이 은혜를 입은 자에게는
예수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고상한지가 보인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더 이상 복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놓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의로워지기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를 버리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다.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 자체가 고상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길에 내려지는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0-11)

그리고 그 '버림'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바울이 버린 것은 단순히 그의 유대적 신분과 화려한 교육 경력뿐만이 아니다.
그의 병든 자아를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를 배설물과 같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오직 십자가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거든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라.
십자가에 그 해답이 있다.



다른 것과 틀린 것 생각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 
다른 건데 그게 틀린 것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다른 것이든 틀린 것이든간에 
판단하지 않는 것 아닐까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자유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다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믿음은 이를 분별하고 소망은 기대를 품지만 
사랑은 이를 끌어안는다. 
사랑이 답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생각

2016년 8월 19일
[소금과 빛 복음캠프 섬김이 모임 메시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헤브론 원형학교 졸업을 앞둔 즈음 선생님은 저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단기선교 2년의 약속의 말씀을 받아오라고. 다른 어떤 것보다 비중 있게 기도하며 주님께 구했고, 우리 모두는 약속의 말씀을 받고 이를 적어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그 때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그 표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시편 131편은 김지산 선교사를 택했다."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믿음의 인물들을 보면 그러합니다. 그들이 순종하는데에 성공해서 잘 된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들을 선택하셨고 끝까지 이끌어가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 말씀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느헤미야 1장 9절이 느헤미야를 선택하셨고 출애굽기 19장 4절 말씀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사도행전 9장 15절 말씀이 사도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로마서 1장 16절 말씀이 여기 소금과 빛 복음캠프를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이 우리에게 힘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처음부터 복음이 부끄럽지 않았다면 굳이 그렇게 표현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의 능력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우리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기 부인에서부터 옵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놀라운 메시지이며,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할 때가 바로, 복음을 부끄러워 할 때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첫 번째로, 자기 자신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동시에 나 자신을 복음보다 높게 여기는 태도가 됩니다. 그 때에는 복음의 가치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그 때에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계획, 자신의 느낌과 욕심이 더 중요해집니다.

저도 아직 아는 것이 없고 어리지만, 제 편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돌아보았을 때 그것은 정말로 힘들만 해서 힘든 시간이라기 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만 자기를 내려놓으면 되는데, 나만 자기를 부인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그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주님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가치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그 가치를 모를 때 우리는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때에는 자연스레 나 스스로를 높이게 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둘째로, 걱정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부끄럽다는 의미는 단순히 떳떳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제게 메시지를 준비하며 가장 저를 괴롭히는 장애물이 한 가지 있었다면, 바로 걱정이었습니다. 내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내 말이 의미있게 다가올까? 다 지루하게 들리진 않을까? 이러한 걱정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서 담대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앞섭니다. 부끄러운 데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그렇게 걱정 근심에 사로잡혀 있던 때에 한국에서 온 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헤브론에 있을 적 담임선생님에게로부터 온 편지였습니다. 편지에는 익숙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이 있다! 잘해도 은혜요, 망해도 은혜다! 그러니 염려말고 당당해라!"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도 결국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비로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의 능력을 깨닫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에겐 한 가지 태도가 요구됩니다.
저는 약속의 말씀인 로마서 1장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 듯한 구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 14절 말씀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저는 이 표현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를 빚졌다고 말하지? 차라리 그들에게 "너희는 복음이 필요한 죄인들이야, 이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너희는 빚진 거야." 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그들에게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중, 주님은 제게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게 하셨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로마서 1장 16절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알고 그렇기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는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친구들은 제가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여 말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그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제가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에 그 비중은 그냥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수준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복음은 그들이 듣고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 구원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빚진 자 된 것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맡은 자들은 마땅히 세상에 빚진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있는 자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을 듣기 원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상실한 마음 가운데 버려져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거부하고 하나님 이야기만 나오면 역겨워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여러분, 빚진 자의 태도로 일어섭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 지 압니다. 소망 없는 존재입니다. 이 자리에 무슨 자격이 있거나 하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말씀에 우리를 의탁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금과 빛 캠프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holybible

마우스오른쪽금지

웹폰트 (나눔명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