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10 요21(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묵상

20장에서 요한복음을 마무리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데, 저자는 21장을 마치 부록처럼 요한복음이라는 책에 덧붙인 것 같다. 바로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신 일이다.
영화 '부활'에서 묘사한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성경을 읽고 있다보면 그 상황과 맥락의 뉘앙스가 읽혀진다. 

베드로를 필두로한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한 번 떠났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도 바치겠다고 했던 제자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의 과거 때문이었을지, 이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면서도 고기를 잡으러 갔다.
'나 같은 것이 무슨 예수님 제자야'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가 여기까지도 느껴진다.

용기도 희망도 힘도 없는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마치 그러한 제자들을 비웃듯 결과는 형편이 없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만나 주신 그 장면과 오버랩이 된다. 계속해서 그물을 던졌으나 허탕을 치는 그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그들과의 마지막 추억을 다시 상기시키신다. 그들은 그렇게 주님을 만났던 것이다.

아무도 주님 더러 감히 누구시냐고 묻지 않았다. 이미 주님이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자 하시며 음식을 권하는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도무지 무슨 말도 나오지 않는, 부활하신 주님 처음 다시 뵈었을 때에는 다 실감나지 않았던 자신의 자격없음에 짓눌려 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주님은 결국 베드로에게 찾아오신다. 한 마디 물으신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베드로라 부르지 않으시고 시몬이라 하심은 꼭 나를 순종의 전문가야, 하고 부르지 않으신 것과 동일하리라.
주님께서 요한복음의 모든 교훈을 마치시며, 주님께서 깊은 낙담 가운데 빠진 베드로를 일으키시는 것을 본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김용의 선교사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마다 들었던 것과 같이.
베드로의 고백은 어색하고, 담대함이 없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제가 무슨 염치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저는 도저히 주님을 제가 사랑한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네요.
제가 주님을 따라갈 수는 없는 놈이라는 것 잘 알지만, 이제 주님 없이는 더더욱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 주님이 아십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나의 하루를 돌아만 보아도
무슨 염치로 주님 앞에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냐 싶다. 
하지만 이런 나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손길은 어느새 코 앞에 다가와있음을 본다.
주님께서 내게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제자들을 많이 세웠느냐.
네가 말씀을 많이 공부했느냐.
네가 경건의 삶을 잘 유지했느냐.
그게 아니다. 주님께서 날 부르신 이유는 그게 아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 때문에 부르셨다. 오로지 그것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완전한 절망 가운데 피어난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주님이 정확히 받으셨다.
이제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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