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25 행15 은혜로 사는 자여 묵상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행15:9,11)

세계선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사건이 여기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를 바가 없다. 야고보는 이 말을 아모스 9장을 인용하며 이야기한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암9:11-12)

나에게는 이 말씀이 이미 사도행전의 때에 말씀에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모스, 이사야 및 많은 선지자들의 소망. 성령의 새 약속이 성취되고 만국이 주님의 기업이 되는 꿈. 그것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의 성취로써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히는' 것이 있다(행15:19). 바로 "할례와 모세의 율법"(행15:6)이다.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신도가 된 사람들이 일어나 요구했던 것이다. 아직 그들의 가치관 속에 자리잡고 있는 너무나도 중요한 구약의 때가 아직 벗겨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에 덧붙여진 바로 그 할례와 율법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곧 주 예수의 은혜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앉아 묵상하고 있는 나도 이방인이다. 나에게 구원이 다가온 것도 순전히 주 예수의 은혜다.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다. 결코 할례와 율법으로 주님의 은혜를 폐할 수 없다. 나의 바리새파스러운 가치관은 여전히 나 자신을 묵상하고 나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과의 거리를 헤아린다. 내가 죄가 많고 연약할수록 하나님은 내게 멀어지는 것과 같고 내가 떳떳하고 거룩할 수록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은혜의 구원으로 찾아오신다. 오히려 주님은 내게서 소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때에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신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말은, 어리석은 자도 지혜로운 자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악한 자도 선한 자도 은혜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잠기기를 원한다. 은혜 입은 자들은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대신, 하나님의 권면을 기쁘게 받아들인다(행15:31).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 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행15:29)'은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권면이었다. 그러나 은혜는 율법과 할례의 그것보다 훨씬 힘이 있다. 은혜 입은 주님의 사람들은 율법보다 더한 일도 할 것이다. 

너 은혜로 사는 자여,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권면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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