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와 포스트모더니즘 해석 - 3(完) 기독교적 비평 편 영화

매트릭스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본 비평


4.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의 비평



1) 주관적 진리, 해체주의, 반실재론


영화가 수없이 보여 왔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의 부정. 그들의 논리를 따라,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는 무엇인지에 대한 암묵적 동의에 의해 생산된다. 진짜 세계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창조한다. 어떤 한 가지 해석도 최종적이라 여길 수 없는 그들은 이러저러한 자신만의 진리를 창조해내었다.


그러나 실제 삶은 무한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실제 세상의 사실은 개인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말장난에도 불구하고 실재는 존재한다.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진리 상응 이론을 피해가느라 고초를 겪는다. 이런 저런 해석과 진리를 만들어냈지만 그에 따른 사실과 실재는 한 가지임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생명의 의미를 다양한 해석 곧 다의성에 열려 있다고 봄으로 말미암은 참신한 해석으로 내놓았을 때 일어난 학살은 4천만 태아를 살해했다.(로우 대 웨이드 사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그들의 실재에 대한 부정은 진리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고, 이러한 공격은 곧 언어를 향한다. 누구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이러한 해체주의는 언어를 파괴한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으로 진리를 선포하셨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우리는 그의 말씀 한 구절에 목숨을 걸어 마땅하다.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 “말이 그 의미를 잃으면 사람들은 자유를 상실한다.” 그러나 현실은 보다 암울하다. 말이 그 의미를 잃을 경우, 사람들은 자유 뿐 아니라 목숨마저 잃게 된다. 목숨 뿐이 아니라 그들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긴다. 영혼을 빼앗긴다.


더욱이 그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들의 그러한 해체주의를 스스로에게 결코 적용시키지 않고 자신의 말을 진리로 내세운다. 다른 이의 말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저작자의 의도를 부인하는 그들은, 절대로 자신이 해체주의자라고 자신의 말을 해체하기를 권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까지도 책임을 지지 못하는 그들의 모순은 그들 말의 일말의 신뢰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는 서로에게 딜레마를 일으킨다. 그들 자신들의 말을 서로 믿을 용의가 없음을 그들은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고수할 수 없는 진술을 하였음을, 터무니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의 삶에서 포스트모던주의자의 진리에 대한 시각을 적용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 전적으로 붕괴된다.


그래서 실재란, 매트릭스에서와 같이 시스템이나 신호 따위로 정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의 의지가 듬뿍 담겨있는 선택으로도 실재는 변화될 수 없기에 이는 선택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러저러한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해석으로 인해 갈라지고 창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재란 오직 영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시다. 더 나아가서 실재란 그의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 날카로워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의 뜻을 판단하시는말씀이다(4:12). 자신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고 이루시는 주님의 말씀(왕상10:10)은 그의 능력이요 지혜라. 모두의 주관적이라고 말하는 헛된 진리를 무너뜨리고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메타내러티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소위 진리를 향한 갈망은 필경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말씀(1:14),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리라.

 


2)평화와 공존


영화의 종국에 보이는 로봇과 인간 사이의 공존과 그에 따른 포스트모던주의의 목적에 관하여는 앞서 말한 바 있다. 로봇도 시스템도 매트릭스도 인간들의 적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영화는 그 끝까지 맞서 싸워야할 하나의 적수를 나타낸다. 누구도 그들의 적이 아니었으나, 요원 스미스는 그들의 적수로 끝까지 싸워야할 악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미스를 통해 그들 곧 포스트모더니즘의 적이 가진 캐릭터를 알아낼 수 있다.


스미스는 본래 요원이었지만, 네오의 힘(소스, Source)이 묻은 후로 특별한 힘을 가진 변종이 되어버린다. 그의 특징은 곧 복제, 획일화모두를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다. 나의 생각이 너의 생각이 되고, 나의 가치가 너의 가치가 되고, 내가 바라는 것을 너도 바라게 하는 것. “합류하라! Join us!그것이 스미스의 힘이었고 결국 그의 힘은 점점 커져가 모든 매트릭스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네오는 끝까지 이와 맞서 싸워 그를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스미스가 복제의 능력을 얻고 난 뒤, 그는 자신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목적만이 남았다고 하는데, 그 목적이라 하는 바 곧 스미스를 처리(복제)하는 것이다. 그의 행동의 키워드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목적이다. 목적이 우릴 창조했고, 목적이 우릴 연결하고, 우릴 끌어주고, 우릴 인도하고, 우릴 조종한다. 목적이 우릴 정의하고, 목적이 우리를 결속시킨다.” 


그의 행동의 목적이란 결국 파괴에 파괴를 거듭하는 것에 그치기는 하지만, 그는 이른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목적을 드러내고 있다면, 이에 대응하는 세력의 핵심단어는 선택이다. 네오는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그의 선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의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 스미스의 목적을 꺾고 승리하여 평화를 성취하는 전개를 그려내고 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지각이 있는 자라면 스미스의 특성과 특징이 이 세상의 어떤 부류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한 가지 진리를 주장하며 자신만의 진리가 유일한 진리임을 선포하는 자들. 그래서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진리가 필요하다며 획일화를 바라는 자들. 자신들의 선택보다 더 뜻 깊은 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 자들.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물론 어딘가에 동일한 특성을 가진 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비판이 정확히 우리 기독교인들을 겨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적은, 힘이 있는 자도 약한 자도 아니며, 오로지 자신만의 진리가 옳다고 주장하며 타인들을 그들 교리에게로 인도하는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불손한 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기독교인들의 목적,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선택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목적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창조과학의 논리 중 목적론적 사상을 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유일한 진리 제시가 그렇게도 싫은 것이다. “나를 따르라(21:19)”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여 정말로 그의 모든 것을 따라는 예수의 명령은 예리한 것 같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주님만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올 자가 없다.(14:6)” 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명은 인간 수준의 어리석은 선택과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임(딤후1:9)을 알아야 한다.

 


3)결론


매트릭스 자체에서 선명하게 비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빛. 반실재론과 언어에 대한 공격을 보아도, 또한 기독교인들을 향한 목적에 대한 힐난한 비평을 보면, 그들의 빛은 명확히 그리스도를 향한 공격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공격 대상은 완벽하게 기독교이다.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며, 자신의 뜻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그들은 이를 겨냥하였다.


어쩌면 그들 최대의 적은 기독교라고 말하는 이 논리는 체계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특징들이 기독교를 가리킨다는 것에는 심한 비약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싫어하고 절대적인 모든 것을 싫어하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기독교가 가장 큰 원수가 된 줄을 알고 있다.

 

매트릭스는 거짓의 집합체이며 모든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적인 개념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는 오만한 인간의 산유물이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가운데 있는 느낌이나 나의 높아진 생각으로 인해 진정한 실재를 찾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주관적 진리를 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실재보다 높이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뜻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목적이 보이지 않더라도 참고 믿음으로 견디고 주님을 따르는 삶. 그것이 거짓된 매트릭스로 점철된 심히 포스트모던적인 이 세대를 이겨내고 살아갈 유일한 길이리라.


포스트모던주의 등 메시지들이 연합하여 기독교를 대항하고 반박하는 전선을 수축하고 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서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져야 하리라.”(히10:39) 우리의 삶으로 그들이 말하는 수많은 해석과 거짓된 진리가 필요 없을 증명해야 하리라. 매트릭스를 포함 기독교를 싫어하며 기독교를 중심으로 조여 오고 있는 세계관을 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때에 마땅히 할 일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복음 앞에 서고, 말씀의 꼴통이 되어 어떻게 행할 바를 알아야 한다.

 

싸움은 시작되었다. 세계관의 전쟁 가운데, 진리의 말씀으로 굳게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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