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31 고전4 만물의 찌꺼기인 나를 본받으라 묵상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고전4:10)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많은 진보를 이루었음을 1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이 "모든 언변과 지식에 풍족하고"(고전1:5),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며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음(고전1:6-7)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이 지나고 깊게 알아가며 경건을 체험할 수록, 그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서로를 향한 사랑과 겸손이 깊어져가기보다 갈등과 교만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들의 모습에서 결정적으로 무엇이 없는지를 밝히고 있다.

3장의 묵상을 기록을 못했지만, 바울은 3장에서 고린도 교회를 돌보아주고 섬겼던 모든 자들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일러주었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며, 그러므로 보이는 사람 사이에서 기웃거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바울파냐 게바파냐 아볼로파냐 하고 나뉘었던 것도 결국 그들의 초점이 하나님이 아니라 '경건한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인 것이다. 바울은 이미 그들에게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가르쳤고 이를 통해서 서로 교만하게 대적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안에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쌓이고 은사가 쌓이면서 그들 안에 교묘하게 퍼져나간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다. 인정받을 수 있는, 연륜 쌓인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이 생겼다. 내게 있는 은사, 경험, 지식, 다른 이들을 권할 수 있는 각종 능력이 마치 스스로 체득된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받아서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된 고린도 교회에게 바울은 그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자신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마치 부끄러운 줄 알라는 듯이, 그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칭찬을 적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다.

그는 처음에는 그들이 세상의 어리석고 멸시받는 것들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는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교회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지혜로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참으로 어리석다. 이전보다 더 매맞고 멸시받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자신들을 "만물의 찌꺼기"라고 표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인정받으며 지혜롭고 존귀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아버지로서 날마다 비천하고 어리석어지며 찌꺼기같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그들에게 확실히 권고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4:16)

참된 겸손함은 가끔씩 아득히 먼 이상향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깨닫는다. 내가 얼마나 높아져 있었는지. 내가 고린도 교회 사람들처럼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얼마나 존귀하고 지혜로워졌는지. 그래서는 안된다. 내가 본받아야 할 것은, 모든 자들에게 칭송을 받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다. 날마다 더욱,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물이 높이 솟아오르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 생명의 복음도 동일한 원리로 흘러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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