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8 고전12 한 몸, 여러 지체 묵상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신다. 또 주님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역을 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루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결국 이 가운데에서 우리가 인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저런 은사의 모양을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령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모양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모양으로 주시지만 결국 주님 안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한 성령, 한 주님, 한 하나님 안에서. 마치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오늘 바울은 성령으로 묶인 교회가 결국 한 몸과 같음을 강조한다. 손을 보고 발이 "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눈이 발을 보고 "너는 쓸 데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여러 지체가 있으나 모든 지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다른 운동은 좋아하지 않아도 농구만큼은 열심히 하려고 한다. 결코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내가 농구부에 있었을 때, 한 주를 부상 당해서 뛰지 못한 적이 있다. 무슨 큰 부상이 아니었다. 새끼 발가락의 발톱이 깨졌고 그 발가락에 멍이 심하게 들었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쪽 발 자체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결국 나는 농구 게임 자체를 뛰지 못했다. 새끼 발가락 하나 부러진 것 뿐인데, 난 그 게임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전12:22-23)

하나님은 모든 지체를 그 지체의 가장 아름다운 지체로 사용하신다. 그리고 특히, 약한 자들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신다. 덜 귀히 여겨지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다. 그러니 내 편에서 누구는 더 놀라운 은사를 가졌고, 누구는 너무 약하고, 누구는 별로 귀하지 못하다는 이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인가! 

공동체를 한 몸으로 여기며 하나의 지체와 같이 바라본다. 몸의 지체가 되었을 때에 그것은 더 중요함도 덜 중요함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일 뿐이다. 한 지체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여기고 한 지체의 영광을 모든 지체의 영광으로 여긴다. 비록 그 모양과 몸의 역할은 다를 지 몰라도 말이다.

그러니 어찌 다 똑같을 수가 있느냐, 어찌 다 사도며 선지자며 교사가 되겠느냐. 각자 그 받은 은사가 다르다는 말이다. 각자 하나님 안에서 한 몸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획일화를 바라는 자가 아니다. 다양성과 통일성이라는 놀라운 비밀을 하나님은 "몸"이라는 비유로 풀어가시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존재함을 설명하신다.

그러므로 바라보라.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우리가 얼마나 그 역할과 모양과 쓰임새에 있어서 다르게 지음을 받았는지. 그러나 그 생명과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동일한지. 한 몸으로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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